Home >

관리자

3152일전 | 16.02.18 | 조회 44

2016년 1월 신인상 수필 - 김숙경_하얀 새끼 고양이와 새 한 마리 외 1편

              김숙경 수필가하얀 새끼 고양이와 새 한 마리김숙경사무실 뒷문 작은 난간으로 나가면 바로 앞에 카센터의 슬레이트 지붕이 있고, 길가의 오른쪽 귀퉁이에 고욤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대로변이라 매연 때문인지 나무의 줄기나 잎이 거무스름하고 윤기가 없는 거친 피부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악조건의 환경 가운데서도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자줏빛 고욤 열매가 소담하게 열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열매를 따가려 하지 않는다. 그 나무의 단골손님은 까치보다는 작고 참새보다는 조금 큰 이름 모를 새로, 그 새가 날아와 열매를 맛있게 먹고 “짹 찌르르” 하고 동쪽 어디론가로 날아갔다가 다시 오곤 한다. 그 새는 친구도 없는지 늘 혼자 다닌다. 무심히 하늘을 보노라면 햇솜 같은 흰 구름이 정처 없이 흘러가고 있다. 누굴 찾아가는 길인지 유유히 잘도 흘러가네…. 생각에 잠겨 있는데 하얀 새끼 고양이가 “아웅” 하며 슬레이트 지붕 위를 살금살금 걸어서 지붕 끝자락에 걸쳐있는 나무줄기로 올라가더니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쳐들고 나무 위에서 열심히 열매를 먹고 있는 작은 새를 올려다보며 애처롭게 “야웅” 하며 울다가 새가 앉아있는 나뭇가지 쪽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가지가 휘청한다.새끼 고양이는 나뭇가지를 꼭 잡고 납작 엎드려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두어 걸음 뒤로 내려와 또 한 번 새를 보고 “야웅” 한다. 열매를 먹던 새가 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짹짹” 울더니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폴짝폴짝 뛰어와 새끼 고양이 입에 물고 온 열매를 넣어준다. 아! 이럴 수가….고양이는 열매를 받아먹고 한참 동안 나무에 앉아 있다가 새가 호르르 날아간 후에야 살금살금 아래로 내려와 슬레이트 지붕 위에 앉아 엎드리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는데, 그 눈빛이 너무도 강렬하였다. 당신이 보고 있으니까 내 친구 새가 날아갔다는 뜻인지, 그 눈빛이 슬퍼 보였고, 나를 원망하는 눈빛이었다.오해하지 마오. 나는 그대들이 서로 다른 날짐승과 고양이이건만 새끼 고양이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그 마음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마음 예쁜 새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되어 넋을 놓고 바라보았을 뿐이라오.요즘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다고 많은 사람은 임에 거품을 물고 말들을 한다. 모두가 자기욕망에 사로잡혀 천 년을 살 것처럼 그렇게 좌우를 돌아보지도, 남을 배려하지도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서로 다른 짐승들이건만 작은 새 한 마리가 새끼 고양이를 돌보다니,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사람들보다 낫구나. 잠시 후 그 작은 새가 후르륵 날아오더니 나뭇가지에 폴짝 앉는다.야웅아, 너 얼른 가서 “네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렴, 새도 같은 말을 할 거야. 너희는 서로 사랑하니까. 새끼 고양이는 엉덩이를 씰룩쌜룩 움직이며 나무줄기 위로 걸어간다.“야웅아, 지금 말해야 해. 지금을 놓치면 영영 말을 못하게 돼….”지난 며칠 동안 하얀 새끼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궁금하다. 작은 새가 유난히 짹 찌르르 짹짹 찌르르 하며 잠시 동쪽으로 날아갔다가 다시 와 울곤 하기를 반복한다. 새끼 고양이를 찾는 것 같다. 마치 새끼를 잃어버린 어미 같아 보였다. 새끼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혹시 다른 집에 입양 보내진 것은 아닐까? 한 달이 넘도록 새끼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작은 새만이 애타게 울고 있다.울지 마라 작은 새야!그대 사랑하던 친구 떠나매일매일 목을 놓아 울어대니내 마음 아프고 슬프구나.이제는 네 동족 친구들과 어울려즐겁고 행복하게 지내려무나그들이 너를 따돌리거들랑반항하지 말고 수굿이 받아들이렴너의 인정 많고 너그러움을그들은 곧 알게 될 거야.그토록 목을 놓아 울어대던 작은 새도 요즘엔 그 고욤나무로 놀러 오지 않는 걸 보면 그는 친구들 무리에서 잘 적응하고 있나 보다. 그런데 나는 요즘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할까? 먼 하늘만 바라보며 관심과 배려로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관계를 생각해 본다.개화기의 서양 선교사 ‘게일’이 복음을 펴기 위해 한국의 오지를 다니면서 느낀 한국인들의 인성에 대한 글을 보면, “첫째, 종교도 없는데 어찌 그리 선량할 수 있을까. 둘째, 배움도 없는데 그리 도덕적으로 성숙할 수 있을까. 셋째, 당장 끼니 끓일 것도 없는데 어찌 그리 느긋하게 살 수 있을까.”라고 기록해 놓았다. 옛 부모들은 자녀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었다. 바른 언행과 예절,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인’을 터득하고 실천해야 하였다. 즉 어질고(仁), 참을 줄 알고(忍), 끌어주고(引), 이렇게 세 가지이다. 이처럼 인성교육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다.근래의 각박한 사회풍토는 인성 곧 인간다운 품성이 파괴되고, 반사회적인 인물들이 나날이 늘어나 이 사회를 어지럽힌다. 교활하고 저속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개개인의 의식변화를 위한 인성교육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기기가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었지만, 현재의 우리는 그것의 중독현상으로 심신이 병들어 가고 있는 현실을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한다.작은 새와 새끼 고양이의 아름다운 우정처럼 우리도 좌우를 돌아보며 고집과 편견 없이 여유로운 마음의 참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그런 사회 풍토가 조성되도록 힘써야 하리라. 노숙자와 만년필김숙경내가 어쩌다 노숙자 신세가 되었나! 서울역 역사에서 밤을 지새운 지도 어언 일곱 달이 다 되어간다. 한때는 남들이 나를 부러워할 때도 있었는데……, 강변을 걸으면서 악몽 같은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본다. 지극 정성으로 나를 키우셨던 홀어머니가 얼마 전 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의 생각, 결혼하여 첫 아기를 낳았을 때 너무 감격하여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던 생각, 유난히 총명하고 애교가 많은 작은딸 생각, 음식 솜씨가 뛰어난 애들 엄마 내 사랑, 내가 하던 건축 자재 사업도 그럭저럭 잘 되고, 큰 탈 없이 화목한 가정이었다는 생각.몇 해 전 평소에 절친했던 박 사장이 중국에다 자동차 부품 공장을 세운다고 하여 축하주를 밤새도록 마셨던 생각, 중국 공장 설립에 자금이 더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해 평소에 그 성품을 잘 아는지라 선뜻 집 저당을 잡혀 대출해 주었던 생각, 그 후로도 급하다 하여 두어 번 더 빚을 여기저기 서 융통을 하여 보내 줬던 일, 그즈음 건축업이 침체하면서 우리 회사도 힘들어졌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에는 내 집에 빨간 딱지가 붙여졌고, 아이들과 엄마는 외가로, 나는 친구 집에 한 달여 머물다가 염치가 없어 그 집에서 나와 이곳저곳을 떠들다가 결국에는 서울역의 노숙자 신세다…….나는 한강 둔치를 걸으며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울분이 북받쳐 “그놈 죽일 놈” 하며 증오를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다 내 탓이야! 그 착한 사람이……. 나는 지금도 너를 믿어, 그 성품으로 보아 분명 그곳에서 사기를 당한 것일 거야, 아! 살아만 있어다오, 어이구! 그놈의 정이 무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성산대교에서 잠실대교까지 계속 걷고 또 걷다가 점심때가 되면 용산역에서 전자상가로 가는 굴다리 옆에 어느 봉사단에서 주는 밥을 먹으러 부지런히 간다.그는 오늘도 한강 둔치를 두어 바퀴째 돌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골똘히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왼쪽 풀숲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무심히 가까이 가 보니 흙과 풀에 가리어 무엇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풀을 헤치고 흙을 파내니 만년필이었다. 언뜻 보기에 싸구려는 아닌 것 같았다. 손으로 흙을 털고 옷으로 깨끗이 닦아내고 보니 백금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최고급 만년필이었다. 그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쫙 빠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만년필을 두 손에 꼭 쥔 채 한참을 멀거니 하늘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니 어젯밤 꿈에 어머니가 물을 한 사발 주시어 벌컥벌컥 마셨는데……, “아! 어머니!……, 하느님, 한강의 용 신님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그는 풀밭에 벌렁 누워 하늘을 보았다.“너는 누구냐? 멋지게 잘도 생겼는데 어쩌다 내 꼴이 되었지?” 그는 만년필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였다.“아저씨! 아저씨가 보시기에도 제가 좀 잘생긴 축에 들지요? 하지만 제 팔자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가 봐요. 저를 만드는 공장에서부터 제 팔자를 느낌으로 알았어요. 저를 마지막으로 세공하는 아가씨가 저를 보며 저주를 퍼붓더군요. “나는 두메산골 외딴집에서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나와 이 공장에 오기까지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는데 너는 무슨 팔자에 최고급 만년필로 태어나 부잣집 사람들의 손에서 대우받고 살고….” 아가씨는 나를 마지막 손질하면서 미치도록 화가 난 모양이에요. 저는 백화점의 화려한 진열대 놓이었어요. 어느 날 예쁘고 멋스러운 아가씨와 엄마가 와서 진열대에 있는 만년필을 이것저것 고르더니 제 몸을 덥석 잡으며 저를 선택하더군요. 저를 약혼선물로 사간 거예요. 약혼식 날 아! 그날은 제가 왕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상자에서 나오는데… 와!…휘황찬란한 실내의 불빛, 신부의 분홍색 드레스가 아주 아름다웠어요. 하객들도 귀티가 철철 흐르는데 정말 대단한 가문인가 봐요. 약혼녀가 신랑의 윗주머니에 저를 꽂아 주는데 손끝이 파르르 떨리더군요, 그렇게 좋은 날 왜 떠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날은 제가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했어요. 그 후 약혼자는 서류에 사인할 때마다 저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어루만져 주더군요.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남자는 약혼녀를 차에 태우고 한강 둔치로 갔어요. 두 사람 모두 화난 사람 같이 가는 내내 말 한마디 안 하더니 강가의 벤치에 앉자마자 큰소리로 말다툼하는데 남자가 갑자기 약혼녀의 뺨을 때렸어요, 왜냐구요? 아이 이런 얘기 해도 되나……. 그 예쁜 아가씨가 바람을 피우고 있대요. 그 아가씨는 남자친구일 뿐이라고 악을 쓰며 우는데, 약혼자가 이 걸레 같은……. 하며 따귀를 때린 거예요. 여자는 울고불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지만 남자는 씩씩대며 파혼하자고 하면서 나(만년필)를 주머니에서 뽑아 휘~익 던져버렸어요. 나는 얼떨결에 풀숲에 떨어져 다친 곳은 없지만, 만약 자전거 도로 아스팔트에 떨어졌다면 이 생명 다했을 거예요. 아이고 끔찍해!……. 그리고 아저씨를 만나 너무 다행이에요. 아저씨 제 생각에는 아저씨가 친구분한테 사기당하신 것 같은데요.” “글쎄, 사람들은 내가 사기당한 것이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 친구를 믿어, 그 친구를 내가 너무 사랑했나 봐.”“에이그! 요즘에는 아저씨같이 착한 사람을 「바보」,「배냇병신」이라고 한 대요, 아저씨 다시는 빚보증 같은 것 서지 않으실 거죠? 아저씨는 남을 이해하고 용서할 줄 아는 인자한 그 마음과 강인한 성격과 열정이 있어 다시 일어나실 수 있어요. 아저씨 이래 봬도 제 몸값이 꽤 많이 나갈 거예요. 저를 팔아 우선 몸단장부터 하시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셔야죠. 아저씨 파이팅!”“그래 정말 고마워.”“아저씨 옛말에요, 착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고요. 아저씨 힘내세요.”“아! 하느님, 한강의 용 신님. 우리 조상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 못난 저에게 이 귀한 보물을 안겨주시다니, 다시 일어설 힘과 기회를 주시다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여보, 애들아! 우리 곧 만나자. 당신이 어디에서 일하는지 친정에 꼭 알려줘야 해“그는 두 손으로 백금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만년필에 입을 맞추는데 양 볼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 댓글0
  • 0

관리자

3173일전 | 16.01.28 | 조회 70

2016년 1월 신인상 시/이미자_새처럼 외3편

새처럼이 미 자털어내고 싶다. 무거운 생각을깨고 싶다. 화석 같은 이 틀을벗어 버리고 싶다.비 맞아 달라붙은 허울을날고 싶다. 새처럼 꿈처럼.작은 바람에도 훨훨 날아가는 깃털 같은 자유로움으로흔들리는 나뭇가지 끝에 앉아있어도 추락하지 않을 가벼움으로아침 이슬 한 모금이면 충분히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비어 있는 마음으로.입고 있는 옷 한 벌이면 더는 필요 없는 새처럼 살고 싶다.독수리처럼 커다란 날개도학처럼 고고한 다리도 필요치 않다 하늘 높이 비상하지 않아도땅 위를 걸을 수 있는 짧은 두 다리와나뭇가지 위로 날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두 쪽 날개면 충분하다.화려한 부리도,날카로운 발톱도 필요치 않다.바람 부는 날에 서로의 몸 기대어줄 수 있는친구 한 명만 있어도 두렵지 않은 작은 새가 되고 싶다.첫눈을 기다리며이 미 자성큼 다가온 겨울 속에서 봄을 기다리지만온통 진눈깨비 뒤덮여도 절망하지는 않겠습니다.땅속 온기 올라오는 해 진 낙엽 속이 아닌 얼어 있는 공기만이 유일한 친구처럼 함께하는 맨땅이지만 운명인 걸 어떡합니까.스스로는 단단한 틀을 깰 수가 없고계절을 건너뛸 수 있는 다리도 없는 것을.그것은 순리를 역행하는 일어쩌면 지상에서 봄도 사라질 수 있는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죠.나무 사이로 드는 햇살은 볼 수 없어도이왕 겨울을 지내야 한다면칼바람 막아주는 그 눈은세상으로 처음 내리는 첫눈이었음 합니다.싹을 틔워낸 것은 따뜻한 봄빛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니까요.꽃잎 피워낸 뒤 무엇을 기억하느냐고무엇이 보이냐고 누군가 물어 온다면세상이 온통 흰 눈으로 흩날린다고꽃잎 위로 또 첫눈이 내리고 있다고꽃보다 아름다운 첫눈을 본 적이 있느냐고되물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빈 잔이 미 자머문 자리 어디인들무슨 상관이겠는가머문 그곳 어디인들 무슨 대수이겠는가.어느 곳에 얽힌들어떤 것에 섞인들너는 너이고나도 나일 뿐이지.잔을 채움을 기다리고술은 비움을 원하지만그것 또한 헛된 욕망이 아니겠느냐한 번 더 채움도 욕심이요한 번 더 비움도 욕심이니.사람아왜 자꾸 빈 잔이라 하는가왜 자꾸 술잔이라 하는가.너는 잔인 채로 나는 술인 채로 그냥 살자.건배이 미 자오늘 밤 너에게 나를 권한다.오늘 밤 나에게 너를 권한다.잔을 들고 건배너는 나를 마시고나는 너를 마시고너는 또 시간을 마시고나는 또 인생을 마신다.마셔도 욕망의 시간은 넘쳐흐르고마셔도 남은 생은 빈 병처럼 어지럽다. 술잔 속에서 시간이 증발하고몸속에서 알코올이 증발해도여전히 남는 건 그래도 증발되지 않는 무거운 욕망이다.거부할 수 없는 운명은 끝없는 욕망 속에서 더 어지럽고남은 생은쓰디쓴 절망 속에서 더 흐느적거린다.헛된 욕망을 비워라.운명의 그림자도 비워라.절은 양심도 비우고무거운 인생도 비워라.어지러운 욕망도 잔에 따라라.쓰디쓴 생도 잔에 채워라.그리고 그냥 건배나 하자.다 비워 내고 어지럽더라도비우며 살아가자.오늘은부딪혀 흘리는 술만큼넘치는 과욕을 버리고내일은건배 후 비워지는 잔처럼온갖 욕망으로 출렁거리는 무거운 인생을 비우자.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버리고 비워 내며 살아가자.

  • 댓글0
  • 1

관리자

3173일전 | 16.01.28 | 조회 43

2014년 한올문학상 시부문 우수상/한명숙_삼월의 눈 외 2편

삼월의 눈한명숙산수유 노오란 꽃이 손짓하는 뒷산때아닌 폭설로 하얗게 질려있다거리의 방랑자가 된 계절봄날이 사라지고 있다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그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애써 외면하지만눈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굴절의 봄네가 사라진 길을 기억해내고 달려갔을 때우리가 함께하던 시간은세상 어디에도 없었다죽을 만큼몸살을 앓아도 좋다환장하게 아름다운 봄날을너와 함께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구룡포의 밤한명숙황혼을 뛰어넘은 시인들은지치지 않는 열정으로구룡포의 밤을 밝혔다장미보다 더 향기로운 은백의 시어는색색 불빛으로 밤바다에 흩뿌렸다삶의 길목마다 거칠게 막아선 돌부리순간순간 뛰어넘어 달려온 삶이상처 난 가슴을 보듬어보석처럼 빛나는 정서로 빛났다고독과 절망도 다가서면 맥없이 쓰러져 뒹구는하루하루가 문학의 향기로탄생시킨 그들의 삶은깊어가는 구룡포의 밤을 들뜨게 했다빗소리 타고 흐르는 시정의 행간 속에가진 자의 여유도 능력도 명예도기웃거릴 수 없는구룡포의 밤은 시의 향기로 가득했다그랬으면 좋겠네한명숙저수지가 뻥 뚫린 가슴을 드러내고울 수도 없는지 눈을 감았다타들어 가던 대지는 닿을 듯 말 듯내줄 듯 말 듯모습을 보이지 않던빗소리에 깊은숨을 몰아쉰다끝이라고 생각하던어제가 오늘의 시작을 알린다마지막이라고 포기했더라면움켜쥘 수 없던 것들이평생을 함께하는 것처럼지독한 고통 뒤에 오는 웃음단비가 되어 문을 활짝 열었다그랬으면 좋겠다세상사 끝이구나 싶다가도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주먹 불끈 쥐고 달릴 수 있다는 것사는 동안 내 편이 되었으면 좋겠다.2014년 3월 한올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한명숙 선생님 작품 입니다.

  • 댓글0
  • 1

관리자

3173일전 | 16.01.28 | 조회 32

2014년 한올문학상 시부문 대상/정정례_당신, 불조심하세요 외 2편

당신, 불조심하세요정정례쥐불 놓은 논둑에 불이 번집니다. 순식간에 온 들판을 다 태우고 있습니다.지나가던 소녀의 옷자락에 불이 붙었습니다. 작은 몸에 불길이 싸입니다.소녀는 비명을 지르고 까무라칩니다. 지나가던 아낙이 이고 가던 물동이를 쏟아 붓습니다 소녀는 인사불성이 되고 몸에 깊은 상처 하나 남겼습니다.또 어디서 누군가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 사랑하고 있습니다.한 사람 태우고 또 한사람 태우고 한 논둑 태우고 또 한 논둑 태우고시커멓게 재만 남습니다.또다시 불씨들이 푸릇푸릇 솟아오릅니다.택배에 실려 온 웃음소리정정례상자를 열자 줄줄이 담긴 곶감들 꾸러미 속에서 배 터지게 웃고 있다고향의 하늘 햇빛 바람을 함께 몰고 온 것들우리는 기억하지 담장 위로 붉게 타던 가을볕을간짓대 끝에 대롱거리던 웃음소리를 문득 떨어지던 붉은 감을한 입씩 베어 물던 하얀 속니를우린 모르지 종달새가 얼마나 높이 나는지땡감이 단감이 되는 이유를다시 만져 보았네 그녀의 웃음소리를 택배 상자를 앞에 놓고 한참을 불렀네 꾸러미마다 쌓여있는 친구 얼굴을나는 알지올해도 내년에도 감나무 아래 우두커니 단발머리 계집애가 서 있는 이유를 그 환한 미소를첨단尖端정정례시간이 지하철을 타고 달린다아이폰에 사람들이 붙들려 있다사람들그 큰 입으로 쏟아지고 몰려 들어간다광고가 눈길을 붙든다턱뼈 190만원코 120만원눈 150만원뱃살 180만원시작을 모르는 뼈를 깎고 눈을 째고살점을 도려낸다어머니를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어느 딸의 어머니가 어머니의 딸이 빠른 속도로 끌려간다아무도 닮지 않았다2014년 3월 한올문학상 시부문 대상 정정례 선생님의 작품 입니다.

  • 댓글0
  • 6

관리자

3173일전 | 16.01.28 | 조회 30

2014년 3월 한올문학상 시부문 본상/민경옥_낙동강에서 와서 외 3편

낙동강에 와서민경옥햇빛 등에 업고 가면서봄날엔 꽃 그림자 띄우며 걸었습니다빗줄기 세례받아가며여름엔 푸른 잎 펄럭이며 뛰었습니다갈바람 소리치는 이 가을엔단풍 이파리 어루만지며 흘러갑니다낙동강 칠백 리6·25동란 때는 젊은이들의 핏물로 적셨습니다거친 돌과 바위를 돌아오랫동안 눈물로 넘쳤습니다이 모든 기억을 어루만지며 이제 저기서 기다리는바다의 품으로 말없이 가고 있습니다어머니의 눈물민경옥어머니는 전쟁 후에쏟아지는 가난을치마폭으로 가리고우리를 지키셨다나는 어머니의 딸이었다그리고 많은 남매의 맏이였다동네 아주머니들이 독을 사러 가던 날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그들을 따라갔다어린 나는 걸음을 따라잡지 못해독을 이고 넘어졌다나의 희망과 어머니의 재산은 산산조각났다피투성이의 다리를 끌고어머니 앞에 섰을 때아무 말이 없었다회초리 대신 두 팔이 날아왔다어머니의 두 팔이 운다는 걸 알았다팔도 운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나도 때로 아이들을 혼내는 대신두 팔이 울 때가 있다 장미 한 송이민경옥꽃도 얼굴로 살아가는한계를 넘어설 때가 있다추위를 견디는오직 장미 한 송이어여쁨을 넘어서자못 경건하다감히 누가 함부로 건드리겠는가꺾겠는가패거리로 몰려다니며입방아 찧는 참새마저 피해서 날아간다2014년 3월 한올문학상 시부문 본상 민경옥 선생님의 작품 입니다.

  • 댓글0
  • 9

관리자

3173일전 | 16.01.28 | 조회 36

2014년 3월 한올문학상 수필부문 본상/한기운_산 위에서 쓰는 만필 외 2편

산 위에서 쓰는 만필한기운산 위에서 보면 먼 곳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액자 속의 그림처럼 손을 내밀면 잡힐듯한 오색의 풍경.이는 엄연한 실상이면서도, 그러나 실상과는 상치될 뿐인, 이른바 초탈의 세상 아닌가 싶다.표면으로 드러난 것밖에 질량 측정이 불가능한, 현실 속의 가상공간이라고나 할까.날씨따라 변화무상하게 전개되는 영상들은, 늘 거리감을 두고 동떨어져 있으므로 하여, 때로는 회한의 대상으로, 마주쳐 있게 된다.수시로 넘나들며 바람이 활보하는 산허리 길.길손들이 쉬었다 가는, 여기 전망 좋은 고갯마루에서, 나는 잠시 휴식의 자세로 앉아, 여태껏 풀지 못한 삶이라는 화두 하나를, 선문답으로 허공에 던진다.보이느니 아스라한 들녘의 평지에는 은빛 강물이 우아하게 흐르고, 그 곁으로는 구조물들을 가득 실은 도시가 함대처럼 우람한 체구로 일렁인다.마침 터널을 빠져나온 철길과 함께, 나란히 내달리는 고속도로가 두텁게 선을 그으며, 산야의 구도적 원근을 분명히 구획 짓고 있다.멀리 가장자리의 검푸른 능선에는 파라솔을 펼쳐 놓은 해변인양, 뭉게뭉게 구름이 떠다닌다.이러한 정경이야말로 평화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한편에는 신비감마저 겨워서, 어쩌면 나는 영과 육이 교차하는, 세속의 변경지대에 와 있지 않은가 하며, 야릇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한참 동안을, 아니 너무 멀리 떠나온 시작은 어디쯤이었으랴?내 인생 여정의 구구한 내레이션이 자막으로 처리되는 필름, 흐릿한 옛날의 흑백 영화 한 편을 떠올린다.뿔뿔이 흩어진 욕망의 잔해들을 쓸어모아, 고스란히 흙무덤 속에 묻어야 할까.고전의 책장 속에 적혔기로, 인생살이 백 년에 불과한데 왕작천년계라 했거늘, 짧은 한평생을 두고 영원을 설계하려 드는 무리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며, 나는 아니겠지 했던 범실이 어찌 없었다 할쏘냐?생각하면 선인들의 교훈을 거울삼아, 초로의 세상을 순리대로 살아야 마땅하겠거늘, 되려 오만을 앞세워서, 역행을 시도했던 빈도가 아마도 부지기수였으리라.그런즉 생사의 명제는 하늘의 이치에 맞도록 걸어두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지혜요, 진리라는 것을, 잠시나마 여기에서 깨달음이니, 가슴에 명심하여 담아 두련다.살펴보면, 걸어서 온 길의 발자취에는 고스란히 축적된 인생 해법의 열쇠가 있다.생생한 체험으로 얻어낸 모범답안으로, 아니면 밝은 길을 제시하는 설법인 것처럼, 우리 앞에는 길을 안내하는 ‘로드맵’이 보인다.그것은 과거의 시간이 만들어 낸 경험이라는 책, 그 때문에 미래를 예측게 하는 경전이기도 하다.언제 우리가 보았으랴마는, 다행히도 쉬어가는 이 자리에서 생존의 기치 관념을 말하는, 기막힌 복음서 한 권을 찾게 되었다면, 과장된 표현이라며 누구라서 돌을 던지겠는가.산 위에서 보면 멀리 있는 경치가 아름답게 투영되는 것처럼 무한 명상의 정상에는, 깨우침의 물줄기가 분출되어 치적의 그릇됨을 알려주기도 한다.모두가 찾아 헤매는 구도의 길이 여기 산 위에 있은즉슨, 감은 듯이 먼 곳을 예측하는 심안의 눈으로, 다시 강건하게 일어서야 하리라.이제 지나온 길은 너무 멀고 막막하여, 도저히 되돌아갈 수 없는 숙명적 현실에 처했음을 알아야 할진저-. 그런 바에야 얼마 남지 않은 내일의 시간을 아껴서, 더 값진 새 삶을 모색하며, 소중하게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가 지금 아니고서 언제랴.설중매雪中梅를 탄식하노라한기운경기민요 12가 중의 ‘매화타령’을 노래하는 대목에는 “매화도 한철 국화도 한철”이란다. 이는 땅 위의 만물이 제각각 한창일 때가 일시적으로 있다는 것을 명시하는바, 개화의 시기를 보나, 풍기는 향기를 보나, 어느 면에서든 간에 매화의 명분이 그중 우위로 뚜렷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렇듯 다른 수종에서는 꽃눈이 맺히기도 전에, 이미 개화를 서두르는 것이 유독 매화인지라, 대게의 매화나무들은 2월을 전후해서, 앙증스럽게도, 꽃망울을 터트린다.종류에 따라서 다른 점이 섣달에 피기도 하고 2, 3월에도 피며 늦게는 4월에도 피는 것까지 하여 시차는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 또한 매화만의 다른 점이다.식물 중에서 가장 먼저 휴면을 털어내며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야말로, 반가운 계절의 전령사임은 틀림없다.몰아치는 눈보라 한풍 속에서 신산스러움을 참아내며 꿋꿋한 의지력으로, 맑게, 깨끗하게, 기질을 다스려 온 나무!그 인고의 정신력을 가히 높이 사고도 남을 것이려니, 중국의 범석호范石湖도 매보에서 적었다시피, 이야말로 천하의 꽃 중에서 으뜸으로 꼽혀 무방할 것이다.“정심불개貞心不改의 군자절君子節”이라. 어떤 경우에든 곧은 마음 변치 않는 의인의 기개를 상징함일진데 아마도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지 않을까 싶다.꽃피는 시기야 물론 이거니와, 화형이나 색상에서 두드러지며 향기에서조차도 일품으로 친다. 꽃의 이름도 각각 다르게 지칭되는데 성품에 따라 명칭 또한 다양한 것이 이것들의 특징이다. 흰색도 있고 연연히 파르란 옥색도 있으며 붉은색도 있으려니와 백매, 옥매, 홍매 등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홑꽃잎도 있는가 하면 겹꽃잎도 상당수 있다.꽃받침이나 가지와 줄기가 파란 것도 보이나니 이름 하여 녹엽매라 하던가.꽃이 희면 백매요, 붉다 하여 홍매로다. 가지가 버들처럼 휘늘어 처지는 것은 능수매라고 한다지? 개화의 시기에서도 차이가 나서 동지 전에 피는 조매와 섣달에 피는 납매 하며, 향기에 따라서도 다르게 호칭한다.한겨울밤, 차디찬 달빛 아래서, 그를 벗 삼아 향기를 전하며, 운치 있게 피어나는 한중매를 비롯하여 종류에서도 수십 가지를 훨씬 넘는다.이렇게 나름 나름으로 분류되듯이 여기에 따른 시인 묵객들의 예찬론이나 매화도가 처처에 남아서 즐비한 것을 알겠도다.예로부터 선인들이 사군자라 하여 매, 난, 국, 죽으로 짝지어 놓고 반열의 첫머리에 매화를 놓은 까닭 또한 이와 같은 정황들이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이나 저나 간에 우리는 겨울에 피는 매화를 통칭하기로 막연히 한매라고도 부르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청경하게 두드러진 이름 하나를 듣게 된다.대부분 매화가 그렇듯,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 피고지고 하지만, 그중 하나는 동절기의 한가운데쯤에서 핀다. 분분하게 흩날리는 눈발을 맞으면서 말이다. 그 백설의 기운을 머금어 다소곳이 꽃술을 터트려 내는데 하도 기품이 있어 설중매라 일컫는다지?이 얼마나 깨끗한 혼백일까 보냐,설중매, 설중매!마음 가득히 부동하는 암향이여!!뉘라서 너와 더불어 동락 하는 것을 마다하리오.하지만 연중 내내 마주할 수 없음만 탄식하노니, 아뿔싸! 매화 한철이 천지간에 조락 하는줄 내 몰랐다네묵상의 계절한기운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 세운이렸다.아침인가 싶으면 금방 저녁이 되고, 낮이거니 했는데 밤은 또 순간에 찾아와서, 사방은 쉽사리 어둠으로 휘 덮인다.계절도 그와 같이 느긋하게 머물지를 못하고, 맞이하여 앉힐 새도 없이 부지중에 와서는 부지 간에 가버리고 만다.이는 당연한 섭리요, 법칙이거늘, 더욱더 오래 향유하지 못하는 정회가 아쉬울 따름이다.그와 같이 봄날을 앞세운 채 여름도, 가을도, 서둘러 떠난 뒤에, 눈앞의 만상은 온통 겨울 천지가 되고 말았다. 앙상한 나무들 가지마다 파랗게 새움 틔우고, 들녘에는 요화들이 지천으로 흐드러져, 별빛의 노래와 바람의 안무로 춤추며, 꿈을 가꾸던 봄날의 따사로움은 어디로 갔나?오는 세월 막지 못하고, 가는 세월 붙잡아 둘 수 없다는 평이한 속설이, 이로 하여 발단했을 것인데, 사철의 진퇴 여부를 두고 어찌 촌설로 설파하랴.한때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글거리던 불꽃 태양과, 검푸른 잎사귀의 요란한 흔들림 하며,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 소리에 이르기까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던 지난여름의 풍요함을 못 잊어 하노라.지금 그 모든 것은 자취를 감추어, 한동안 올 수 없는 이방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갔다.기껏 남은 거라곤 오솔길에 쓸쓸히 뒹굴며 버석거리는 가랑잎들과 매무새 허름한 억새만이 거의 전부나 다름없는데, 호호막막 빈들에 생명체의 동태인들 그리 흔할 리 만무하지 않는가?그저 춥고 을씨년스러울 뿐인 자연, 그 속의 겨울.겨울에는 모든 사물이 움츠려서 동면을 이겨야 하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하지만 나는 그러한 겨울을 은근히 반기는 편이다.칼바람 세차게 불어 꽁꽁 얼음 어는 강변의 호젓함과 하얗게 눈 덮이는 산골짝의 은은한 정취, 아니 그 같은 낭만적 분위기라기보다는, 속 깊이 감춰져 있는 내면의 세계를 숭고하게 여기고 귀하게 생각한다.가려져 있는 부분의 단층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동원하여, 시린 손 가슴에 넣고 혼자 초연히 걷는 파행!그런 냉각된 기류 속에서의 암울함을 달게 삭혀내는, 인고의 열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겨울은 썰렁하고 삭막한 계절, 그래서 말이 필요치 않은 정각의 시간,냉정한 사려와 아픈 고뇌로, 자기 자신을 되살펴 보는 성찰의 때인지라 더더욱 그런지도 모른다.나는 수행자처럼 묵묵히 이 겨울을 지내고 있다.유연한 일상들이 돌처럼 경직되어 어쩌다 와르르 부서질까 염려되는 딱딱한 변화의 환경 안에서, 아무나 쉽게 짜 맞추지 못하는 퍼즐게임에 심취하여 고독한 행복으로 있으려 한다.변화는 퇴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의 새로운 시작과 발전을 내포하는 것이라 한다면, 영하의 촉감에 불과한 동결의 과제 앞에서, 묻어둔 불씨인 것처럼, 따뜻한 온도를 채굴하여 스스로 식은 몸을 데워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아무리 날씨가 춥다 하여도, 살아 있는 것의 본능은 뜨겁지 아니한가.그래! 그런 것, 겨울이야말로 새 생명이 만들어지는 태실이기 때문에.들어보자.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얼어붙은 흙더미의 깊은 곳에서 탄생을 준비하는 떠들썩한 소리를, 아니면 저만치에 물러나 있는 계절을 불러들이려고 규칙 있게 꿈틀거리는 씨앗의 박동을,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 겨울의 참다운 의미를 왜 아니 모를까.나는 지금 새삼스럽게도 뒷모습의 계절을 떠올리며, 화려했던 한때의 영광에 대하여 진단하고 분석하는, 연구의 시간표를 들춘다.그러나 아직은 엄동의 절후.무디고 미련해진 신경을 일깨우기 위해 자기영혼의 아픈 뼈마디 속에 예리한 각성의 침을 찔러야 하는 용단이 필요하다.갑작스레 경적을 울리며 나타나는 기관차처럼, 머지않아 우리 곁엔 따스한 봄이 오리라.봄날에는 다시 또 사방에 꽃이 필 테니까.2014년 3월 한올문학상 수필부문 본상 한기운 선생님의 작품 입니다.

  • 댓글0
  • 7
Designed & System by 제로웹  ㆍTotal 34,565